작가에게 명함이 필요할까?|전시장에서 '나'를 기억하게 만드는 첫인상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명함'이다.
전시 준비는 할 것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은데, 명함까지 꼭 챙겨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처음 명함을 만든 건, 갤러리 관계자의 초대를 받아 전시 오프닝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을 때였다. 혹시 다른 갤러리 관계자나 작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작업을 보여주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일이 생긴다면, 아무래도 명함이 있으면 깔끔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날은 SNS주소를 주로 보여주며 마무리가 되었지만, 좀 더 내 작업의 장르에 맞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분명 명함을 건넬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아티스트에게 회사원 같은 느낌을 주는 명함이 조금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시장에서의 만남은 대부분 짧고 순간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실물 매체가 있을 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확실하다.
🧷 전시장에서 명함이 필요한 이유
- 관람객이 작가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
→ 말로 소개하고 헤어지면 금세 잊히기 쉽지만, 명함은 그 여운을 길게 만들어준다. - 작업에 관심 있는 이들과의 연결고리 역할
→ 작가를 찾고 싶은 관람객, 이후 협업 제안을 하고 싶은 기획자, 작품을 사려는 의지가 있는 관람객에게 가장 빠른 전달 도구. - 작가로서의 태도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체
→ 간단한 정보만 담겨 있어도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감각을 가진 사람인지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 어떤 정보를 넣어야 할까?
실제로 내가 명함을 만들 때 적은 정보는 아래와 같다.
- 이름 (실명 또는 활동명)
- 작가의 포지션 (예: 포토그래퍼, 시각예술가, 설치미술 작가 등)
- 연락처 (개인 정보 이슈가 있을 수 있으니 휴대 전화보다는 이메일을 추천)
- 작업을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 SNS 주소 (개인 계정 X)
나는 그 때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최대한 간단하게 제작을 했지만, 그 외에도 한 줄 소개 문장 같은 게 들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계절의 색을 기록하는 사진가", "시간의 층을 작업하는 시각예술가"처럼 나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문장 같은 것 말이다. 중요한 건,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게, 하지만 나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구성이 포함되는 것이다.
🎨 디자인은 꼭 예뻐야 할까?
예뻐서 나쁠 건 없다.
그렇지만 명함의 목적은 일단 정보 전달이 우선이기 때문에, 폰트는 잘 보이는 것으로, 컬러는 내 작업 스타일에 어울리면서도 깔끔하게 보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하는 작업과 명함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면 보는 사람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고, 오래 기억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이 재질이나 후가공도 너무 과한 건 피하고, 적당한 무게감과 질감이 있는 종이가 좋겠다. 흔히 회사에서 사용하는 명함 정도의 두께와 질감이면 되지 않을까 싶고, 작업 이미지가 들어간 명함도 좋지만, 시리즈 작업을 하는 경우엔 이미지를 통일성 있게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 실물 vs 디지털 명함?
요즘은 실물로 된 명함을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고, (일 때문에 특별히 챙겨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간편하다는 이유로 QR코드로 링크를 연결하는 디지털 명함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전시장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실물로 가져갈 수 있는 명함/리플렛/작품 리스트 등의 반응이 괜찮은 편이다. 번거로울 것 같은데도, 혹 나중에 버리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일단 실물로 된 것을 보면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나도 전시에 가면, 물론 작품이 마음에 들 경우에 한하지만, 리플렛도 챙기고, 작가의 SNS 주소 등이 적힌 명함도 가져온다. 그러니 첫 전시를 준비하며 디지털 명함과 실물 명함을 고민한다면, 우선 금액 부담이 없는 선에서 소량의 실물 명함은 준비해 두는 걸 추천하고 싶다. 요즘은 자기 PR 시대가 아닌가 ㅎㅎ.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 작품만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그게 명함이 하는 역할이다. 말주변이 없어도 괜찮다. 멋진 포트폴리오가 아직 없어도 괜찮다. 내 작업을 소개하는 아주 작고 조용한 시작이 명함일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