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 전시 후기|기대 없이 갔다가 압도당한 이유
론 뮤익 전시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 저기에서 들려왔다.
특별히 어떤 작품인지 찾아보지도 않을 만큼 난 큰 관심이 없어서 보러 갈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해서 갔다.
그런데 웬 걸? 엄마도 엄마지만 나도 엄청 재미있게 본 전시로 남게 되었다.
일단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밝히자면, 나는 작가의 진짜 의도가 1차적으로, 우선적으로 궁금한 사람은 아니다. 일단 내가 작품을 보고 내 생각대로 느끼는 것이 더욱 우선되고, 그게 나에게 맞는 관람 방식이어서 아래 적는 글 역시 철저하게 개인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쓰인 글이므로 작품에 대한 적절하고 정답인 해석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이야기한다.
🧠 마스크 II – 정지된 감정의 순간
첫 작품부터 강렬하다.
마스크II 라는 제목의 두상은 작가 론 뮤익의 자화상이다. 눈을 감고 머리를 기대고 있는 게 마치 배개에 머리를 뉘이고 잠이 든 모습처럼 보인다. 피부 표현과 표정까지 모든 것들이 너무 실제처럼 보여 마치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상상하게 되지만 작품 뒤로 가면 곧장 그것이 텅 빈 마스크일 뿐이라는 걸 다시 인식하게 된다. 사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좀 소름이 돋고 있는 중이었는데 뒤통수까지 완벽했다면 그게 진짜 사람 머리만 덩그러니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좀 징그럽다고 생각할 참이었다.
센과 치히로에서 머리만 두 개? 세 개? 돌아다니는 것도 꽤나 괴기스러운 장면으로 남아있어서 이렇게 리얼한 두상은 더 그랬다. 금방이라도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뜰 것만 같았기 때문에.
🐓 Chicken / Man – 닭과 눈싸움을 벌이는 남자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 닭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할아버지의 조각 '치킨/맨'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물론 상황 자체도 재미있지만, 작품을 빙 둘러 보며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봤을 때 그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에 있다.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어떤 상황이 한 면으로 보는 것보다 다각도로 관찰되는 것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데 이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이런 부분에서 내게 큰 감흥을 안겨주었다. 한 바퀴를 쭉 돌아보면서 할아버지의 시점, 외부자(관람자)의 시점, 닭의 시점까지 다양한 각도로 작품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상황을 꾸며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치킨이 왜 식탁 위에 멀쩡한 모습으로 올라와 할아버지와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건가. 닭은 어느 아침 갑자기 날아 들어온 침입자인가. 할아버지는 예상치 못한 침입자와 눈치 게임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 눈싸움은 일과처럼 벌어지는 그들만의 루틴인가. 뭐 이런 쓸데 없지만 재미있는 상상들 말이다. ㅎㅎ
이후에 본 작가의 작품들 역시 조각 자체보다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것들이 많았고, 그래서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 론 뮤익 다큐 영상
예술을 하면 타인의 예술을 그저 결과물로 받아들이기 보다, 그것의 탄생을 위해 보낸 기다림, 고뇌, 실패와 같은 감정들이 함께 다가온다. 이게 이상적인 관람 태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전시 영상은 앞에서 본 결과물들에 대한 과정이 섬세하게 담겼다는 의미에서 나에게 더 큰 감흥을 주었다. 나는 언제나 결과만큼이나 과정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었으므로.
영상은 두 개로, 합치면 한 시간이 넘는 꽤 긴 길이의 영상이지만 론 뮤익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면 그냥 넘기지 않기를 추천한다. 점토로 형태를 잡고, 피부에 색을 입히고, 가발을 얹는 그 모든 장면을 보고 있자니, 완성된 조각들 앞에서 느낀 전율이 다시금 떠올랐다. 결과물에서부터 과정까지 관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전시를 더욱 완전하게 만들어준 게 아니었나 싶다.
처음엔 끌리지 않았던 전시였는데, 관람 후 느낌은 완전히 달라졌다.
론 뮤익 전시는 단순한 극사실주의 조각 이상의 감각적인 이야기와 관찰이 담긴 전시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7월 13일까지 전시 중이니, 아직 못 봤다면 한 번쯤 가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